사랑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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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창세기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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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8-01 00:00 조회1,1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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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샘자원봉사자 칼럼 바벨탑 사건(창세기 11:1-9)


창세기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장부터 11장까지를 원역사시대라고 하고, 12장부터 50장까지를 족장시대라고 한다. 원역사 시대에는 큰 사건 네 가지가 있는데, 천지청조 인간타락 홍수심판 바벨탑 사건이고, 족장시대에는 네 명의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오늘은 원역사시대의 4가지 사건 중 바벨탑 사건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바벨탑 사건은 한 마디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홍수심판을 통해 전 인류는 멸망하고 노아의 8식구를 통하여 인류가 다시 번성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대적한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곧 바벨탑 사건이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11:1)

오늘날 보면 언어도 다르고 발음도 다른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나라만 해도 언어는 한국말 하나인데 발음은 지역마다 달라서 소통이 잘안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당시는 언어도 하나였고 발음도 하나여서 소통이 잘 되었다. 그러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으면 좋았을텐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겠다며 바벨탑을 쌓은 것이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11:2)


여기 시날이란 두 강의 땅이라는 뜻인데,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은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 부근에서 살다가 사람이 많아지니까 동쪽으로 옮겨 두 강, 즉 유브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 즉 구 바벨론 지역으로 옮겨서 살았다는 말이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11:3-4)


같은 언어와 같은 발음으로 잘 소통되었으면 그 힘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으면 좋았을텐데, 기껏 하는 짓이 탑을 높이 쌓아서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을 내려고 했다. 바벨탑 쌓는 자체는 잘못 아니다. 인간 이름을 내고 인간 왕국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교만이 잘못이다.


또 그들의 잘못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9:7)고 하셨는데,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서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다 흩어버리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11:6-8)


언어가 혼잡해지면 일이 되지 않는다. 노아의 후손들, 한창 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을 혼잡하셨다. 그러니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벽돌 올려달라는데 짚을 올려주고, 나무 올려달라 하는데 돌을 올려주고..., 도무지 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동서사방으로 흩어져서 살게 되었다.


오늘 말씀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받으면 좋겠다.


첫째, 교만을 멀리하자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성품 중 가장 약한 부분이 교만이다. 조금만 잘 된다 싶으면 교만해진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가장 싫어하신다. 왜냐하면 교만은 마귀의 성품이기 때문이다(14:12). 우리 모두 교만을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인 겸손을 채우도록 하자.


둘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본분을 잘하며 살자는 것이다.

홍수 심판의 그 참혹한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껏 사람들이 한 것이, 온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바벨탑 쌓아서 흩어지지 말고 하나님과 상관하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는 하나님과 상관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12:13에 보면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분분은 해야 되지 않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본분이 있다. 아버지로서의 본분, 어머니로서의 본분, 자식으로서의 본분 등..., 그런데 우리는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다.


모든 본분 이전에 사람의 본분이 있다. 곧 하나님과 상관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개에게 예배해라, 돼지에게 기도해라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예배해라, 사람에게 기도해라 하셨다. 왜냐하면 개는 개의 형상대로, 돼지는 돼지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은 육체가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짐승은 심판이 없다. 짐승은 육체가 죽으면 끝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다. 육체가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부모와 상관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고 교통을 끊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윤리 도덕적인 죄만 죄인 줄 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근원적인 죄가 있다. 하나님과 상관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사는 그 자체가 바로 죄이다. 이런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은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네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하나님 잘 섬기며 심판 대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야겠다.


글쓴이/ 강완석(창원산성교회 원로목사, 사단법인 사랑샘공동체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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