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샘칼럼
사랑샘칼럼

나의 섬김, 공동체의 유익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1-01 00:00 조회57회 댓글0건

본문

사랑샘자원봉사자 칼럼 나의 섬김 공동체의 유익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섬깁니다. 섬김의 중심에 주님을 두어야 하지만 자신을 둘 때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자신의 은사와 사역 그리고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무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역자들과 비교하고, 때로는 질투하고 때로는 우월감을 느낍니다. 그 결과로 경쟁의식이 섬김의 추진체가 되어 버린 모습입니다.


고린도전서 121-11절에서 이와 같은 무의식적 흐름을 바꾸고자 합니다.“나의 섬김 공동체의 유익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사실을 설명하고 그 사실을 근거로 두 가지 실천 사항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첫 번째 사실은, 나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는 예수가 주이심을 성령 하나님을 통해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본문 2절에서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 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고, 말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16개월을 지냅니다(18:11). 바울의 고린도 사역 때문이었을까요. 고린도에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고백이 성령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3).


사도행전 1장에서 육신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육신 그대로 하늘 보좌로 승천합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말씀합니다.“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1:5). 이 말씀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예언적으로 선포했던 말을 기억나게 합니다(3:16).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은 하늘 보좌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으셨음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심은 이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일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의 주가 되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2:36). 다시 말해,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가 하늘 보좌에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구원의 주님이심을 증명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감사한 내용을 기록합니다. “모든 언변모든 지식그리고 모든 은사에 대해 감사하지만, 감사의 본질적 내용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입니다(고전 1:4-6). 고린도 교회의 은사적 풍성함은 그들에게 복음의 견고한 뿌리 내림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영적 은사는 예수가 주이심을 우리 각자에게 증명하는 증거로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두 번째 사실은, 나의 영적 은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일하심의 결과이다. 바울은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을 언급합니다(고전 12:4-6). “은사는 헬라어로 은혜라는 단어와 관련됩니다. 즉 은사는 값을 내지 않고 얻게 된 선물입니다. 각각의 은사는 같은 성령께서 주신 것입니다(4). “직분은 섬기는 일의 종류를 말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섬기지만, 그 섬김의 대상은 같으신 주님이십니다(5).“사역”(개역개정)은 새번역에서 일의 성과로 번역합니다(6). 사역은 헬라어로 능력, 영향력, 열매를 뜻합니다. 우리 각자의 섬김은 다양한 능력으로 나타나지만, 같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6).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은 모두 같은 성령님,” “같은 주님,”“같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영적 은사들을 열거한 후 바울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라고 합니다(11). 본문이 제시하는 세 번째 사실은, 나의 영적 은사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함이다.“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7). 새번역에서는 유익공동 이익으로 번역합니다. 섬김의 목표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라는 표현은 아마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장하고 있었던 구호를 바울이 그대로 인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주님 안에서 자유를 외치며 그 자유를 자신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익하지 않을 수 있고 덕을 세우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두 가지 실천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동역자의 탁월함을 질투하지 맙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입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당연히 사울왕 다음으로 왕이 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자신의 자격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세움을 받은 다윗은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선택을 인정하며, 다윗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는 바울을 따르는 사람도 있었고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볼로를 경쟁자로 보지 않습니다. 바울 자신은 심는 이, 아볼로를 물 주는 이로 여깁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과 아볼로 모두 하나님에게 속한 동역자로 여기며, 자신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사역한다고 합니다(고전 3:6-10).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우리는 바울의 자유함을 배워야 합니다.


둘째, 동역자의 부족함을 책망하지 맙시다.

예루살렘 공회 후 바나바와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려가길 원했고,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중 밤빌리아에서 그들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데려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15:37-38). 이 다툼으로 바나바와 바울은 더 이상 선교 여행을 함께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더 이상 유용한 동역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자기 삶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던 그때,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말합니다(딤후 4:11). 많은 학자는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고, 마태와 누가 모두 마가복음을 사용한 것으로 봅니다. 동역자의 잠재력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그 잠재력을 실현하게 합니다.


달라스 신학교의 도널드 캠벨 교수님은 울타리 기둥 위에 있는 거북이 그림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고 합니다:“울타리 기둥 위에 거북이가 있다면 그 거북이는 스스로 그곳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거북이를 그 기둥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울타리 기둥 위에 있는 거북이와 같다.” 우리 각자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거북이의 울타리 기둥입니다. 교회의 유익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두신 곳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은혜의 능력으로 신실하게 주님의 공동체를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글쓴이 정종문 박사(미국달라스신학대학원 박사, 사단법인 사랑샘공동체 재능기부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